많은 베어스 팬들이 그렇듯 나도 플레이오프 SK전 패배 후 겨울잠에 들어갔었다. 2승을 먼저 거뒀음에도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고 이후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오프시즌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에 돌아와서 우선 휴식을 조금 취했고 이제는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할 때다. 지난 주 오프시즌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경기 다음으로 훈련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겨울에 3~4개월 동안 오프시즌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헬스장에서 그리고 필드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오프시즌은 한국과는 많이 다른 편이다. 한국 팀들은 겨울 내내 훈련을 하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한달 내지 한달 반 정도의 휴식을 갖는다. 나는 미국식을 선호하지만 그건 그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 5~6일, 하루 3~4시간의 웨이트트레이닝, 러닝 등을 즐기며 스프링트레이닝은 짧을수록 좋다. 이번에 어떤 훈련을 하게 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 베어스 단장(General Manager)님과 1대1 면담을 가졌다.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나의 재계약에 대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고 싶었다. 2010년 재계약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는 개인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이고 내 피칭에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준 분이었다. 즐겁게 진행된 면담이었지만, 나는 그의 바디랭귀지를 읽을 수 있었고 두산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할 것을 감지한 채 자리를 떴다.
오늘 필드매니저로부터 재계약 불가에 대한 공식 통보를 접하고 다소 놀랬다. 이 소식은 내게 참으로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두산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내가 보냈던 시간들은 정말 좋았다. 베어스 팬들 앞에서 플레이 할 수 있었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내 가족들에게 굉장한 경험이었다.
재계약 불가는 내 투구 내용과는 상관 없는 결정임을 알고 있다. 나는 베어스의 신뢰할만한 선발투수 중 하나로서 정말 잘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즌 후반 몇 달 동안 우리 팀을 위해 편안하게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었고 KBO의 모든 것에도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팀에서 이룬 성과들과 성취할 수 있었던 점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마도 준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생긴 경미한 부상이 재계약 불가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추측할 수 밖에 없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부상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고 우리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더라면 나는 분명 등판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시리즈에 등판할 수 없을 것이라 언급한 신문기사가 났던 것으로 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팀에 의한 결정이었지 나의 결정이 아니었다. 사실 서울에서 딥티슈 마사지 치료를 받으면서 짧은 시간 내에 극적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SK전이 진행될 때 나는 계속 투구 연습 중이었다. 4차전이나 5차전에서 등판이 가능했지만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렇게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팀이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팀이 내 부상이 걱정되었던 것이라면 다르게 접근할 방법들이 있다. 팀은 물론 리스크를 감수하고 부상인 선수와 계약하기를 원하진 않겠지만, 나는 다음 시즌에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들은 내게 비보장(non-guaranteed) 계약을 제안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팀은 재정적인 리스크 없이 지난 시즌 팀을 위해 좋은 활약을 보였던 선수를 다시 쓸 기회를 갖게 된다. 아시아와 메이저리그에서 믿을만한 경력을 가진 선수를 쉽게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게다가 나는 필드와 오프 모두에서 두산과 궁합이 정말 잘 맞았다. 많은 선수들이 아시아에 와서 적응하고 문화적 충격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두산이 비보장 계약쯤은 시도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결정난 것은 결정난 것이고, 이제는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두산에서 일하는 훌륭한 분들이 참 많았고 나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두산에서 뛰는 동안 팬들이 내게 얼마나 잘 해주셨는지 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아무리 드려도 모자란다. 지난 시즌 이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KBO에 대해 내가 무지했던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올 시즌 KBO와 서울에서 뛰었던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고 내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난 내가 한국에서 다시는 뛰고 싶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올 시즌을 보내고 난 완전히 변했다. 한국은 정말 멋진 곳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내 거취 문제는, 글쎄,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아시아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적합한 상황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에서 뛰기 위한 시도를 마지막으로 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다. 지금으로써는 계속 몸을 만들면서 2010년을 준비하고 어느 팀에서 뛸 수 있는지 기회를 계속 살펴볼 생각이다.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모든 성원과 격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